1979~
Storytelling
개청 40주년 은평구 스토리텔링 사진집
은평, 그곳에 살다
Eunpyeong, live there.
01
서울시 이전의 은평
서울시 이전의 은평을 소개 합니다.
02
은평의 서울시대
광복 이후 은평의 서울시대 시작.
03
은평구의 탈바꿈
함께 살아가는 은평, 은평구의 탈바꿈
04
비상하는 은평의 21세기
시대 정신을 잘 알고 실천하는 시민
불광천의 대변신
은평구 전경 (현 녹번동 푸르지오아파트 뒷산에서) / 2005
by 차철수
겨울풍경 / 2004
겨울풍경 / 2004
은평구 전경 (현 녹번동 푸르지오아파트 뒷산에서) / 2005
by 차철수
백련산에서 본 은평구 / 2006
by 박종배
은평구 전경
by 차철수
1990년대의 마지막 2년 동안 은평과 주변 지역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21세기 은평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서울시는 2001년 인천공항 개항을 위해 1978년부터 사용되어 온 난지도 쓰레기처리장 처리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월드컵경기장 유치도 확정되면서 난지도 일대를 '대북교류 거점 및 서북부지역 부도심'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난지도-상암동 일대는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화가 이루어져 여의도의 뒤를 잇는 방송단지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로 변모하고, 인접한 은평도 큰 영향을 받으면서 수색증산뉴타운과 수색역세권 개발까지 이어지게 된다. 또한 은평구와 용산, 서울 동북부를 이어주는 지하철 6호선이 2000년 12월에 개통되면서 교통 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지하철 6호선과 경의중앙선, 공항철도가 연속적으로 개통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은 3, 4개 노선이 통과하는 중요한 역으로 부상했는데 경의중앙선 부분은 은평구에 위치하고 있다.
「 6호선 개통, 잘 알죠. 대림시장 길, 이길이 원래는 응암오거리 끝까지 지하 철이었어요. 상가분들이 장사 못 한다고 반대해서 건너간 거예요. 다리 건너면 응암역인데, 대림시장 길은 돈이 들고 개천은 돈이 안 들잖아요. 그러니 정부에서는 이쪽으로 해줬지요. 그래서 쭉 올라가면 응암오거리고 제일 번화가인데 역이 없으니까 죽은 길이 되잖아요. 우린 나가려면 버스 타야 되고. 이건 참 말 많은 지하철 개통이고 아쉽게 됐어요.」 - 서성희 응암동 -
6호선 개통 / 2000
by 서울교통공사
DMC역 정면
by 수색증산뉴타운
은평구청사 별관 준공식 / 2008
은평구청사 본관 리모델링 / 2008
현재 은평구청 전경 / 2019
특히 주목해야 할 은평의 변화는 불광천 복원사업이다. 불광천은 갈수기에 말라버리는 건천이어서 예전에는 생태하천의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했고 폐수가 흐르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1999년 11월 불광천 복원계획이 발표되었다. 당시 목표는 '불광천을 포함해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부근 난지천, 홍제천을 2002 한일 월드컵 개최 이전까지 생태지구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불광천 공사 / 1975
불광천 전경 / 2010
불광천 공사 / 1975
「 은평에 놀러 온 친구나 친지에게 소개 해주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저는 잘 정리된 불광천을 산책장소로 권하고 싶어요. 다음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은평의 보물이 바로 불광천이에요.」 - 차철수 대조동 -
「 불광천은 아주 시커멓고 더러운 곳에 다리를 놓고 아주 깨끗하게 가꾸면서 불광천변이 됐잖아요. 지금은 벚꽃축제도 하고요. 이건 정말 잘 한 거예요. 여기에 심은 땅콩을 못 먹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로 더러웠었어요. 그거를 싹 바꿔 놓은 거죠. 문화공간으로, 시민들 위한 곳으로 정말로 잘 한 일이에요」 - 서성희 응암동 -
「 불광천 복원에 직접 개입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환경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협치 차원에서 불광천을 어떻게 할 지 주요과제로 삼아 불광천의 지속가능한 이용과 보존방안 과제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최승국 갈현동 -
불광천 / 1995
by 곽미리
불광천 / 2004.04
불광천 벚꽃맞이 구민 걷기대회 / 2009.04
불광천 직강공사 준공식 / 1976.10.20
불광천 직강공사 새마을노임소득사업 / 1976.03.31
하천 복원은 자연환경 보전과 친수환경 조성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자생식물 군락지를 조성해 악취를 줄였고, 수질개선, 정화기능을 통해 자생하는 불광천으로 거듭났다. 물길을 곡선형으로 만들어 유속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물고기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연신내역 등 주변 4개 지하철 역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와 독바위의 계곡수 등을 끌어들여 수량을 확보했다.
이후 불광천은 은평구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데이트 코스로 변모했다.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 벚꽃길이 조성되었다. 그중에 벚꽃길은 '원조'격인 여의도 윤중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벚꽃축제가 열릴 정도다. 불광천 주변은 북한산의 11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담는다리, 레인보우다리 등 멋진 인도교들이 놓이면서 진화를 거듭했고, 아트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작은도서관까지 들어섰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빵집, 라면집, 스시집 등도 성업 중이다.
불광천 미꾸라지 방류 모습 / 2011
「지금 불광천 쪽을 좀 더 문화적인 시설로 만들고 있고, 너무 좋은데... 저도 원래 전공이 음악이다 보니 아직은 예술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적지 않나 싶어요. 그런 공간이 조금 더 생겨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시설들이 조금 더 늘어나면 좋겠어요.」 - 박이레 대조동 -
포수마을 만화도서관 개관식 / 2014.07.24
불광천생태학습체험장 / 2017.02.07
제6회 불광천 벚꽃 축제 / 2017.04.09
제7회 불광천 벚꽃 축제 / 2018.04.06
불광천 레인보우다리 / 2010
불광천 전경 / 2010
은평뉴타운 이야기
'뉴타운'은 2002년 민선 3기를 맞은 서울시의 주요 정책 중 하나였다. 조금 단순화하면 강북의 '강남화'라고도 할 수 있는 뉴타운사업은 길음과 왕십리, 은평 3개 지역을 시범사업지로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중 은평뉴타운은 당시 진관내·외동과 구파발동 일대로, 면적으로는 349만5248㎡이다. 이 사업은 2004년 12월 23일에 1단계가 착공 되었는데, 사실상 지금까지도 형태를 조금 달리하며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은평뉴타운 설경 / 2010
기자촌 전경 /2003
「 제가 생각하는 은평의 자랑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은평뉴타운의 오늘날 모습이 가장 자랑 스러운 모습이에요. 지금의 롯데몰까지 있는 뉴타운은 정말 자랑할만 합니다.」 - 김주환 진관동 -
「 은평뉴타운을 개발하면서 지역 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가능한 친환경적으로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도록 활동해왔지요. 」 - 최승국 갈현동 -
「 은평뉴타운이 신도시잖아요. 전통과 함께 공존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뉴타운이 되겠죠.」 - 양종승 은평구 샤머니즘박물관장 -
은평뉴타운 개발전 / 2008.06.26
「은평뉴타운 때문에 완전히 도시화된거지요. 이 은평구를 아주 업그레이드한 건 굉장한 사건이고, 건설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뉴타운은 굉장한 혁신이에요.」 - 서성희 응암동 -
「 은평뉴타운이 예전에는 판자촌이었고 시 도 너무 낙후되고 불법 건물도 많았었어요. 완전 옛날 시골 모습들도 볼 수 있었죠. 지금은 180도로 바뀐 거죠. 구파발역 앞에 인공폭포 가 있는데 그 앞 도로가 메인 도로였고, 원래는 다 산이었어요.」 - 조병권 갈현동 -
은평구민체육센터에서 바라본 은평뉴타운 부지 전경 / 2006.10.10
「은평구는 평균 거주 연수가 16년이래요, 다른 구는 8년이라고 하는데. 3,4대가 살고 지역색이 남아있는 곳이 은평이에요. 문화시설들이 약한 부분을 힘을 합쳐 보충해나간 기억들과 뉴타운이 생기며 기존에 있던 건물들을 전부 다 철거해서 지금은 없어진 진관동의 옛 모습을 기억하려고 <진관동 이야기>를 만들고, <불광동 이야기>도 만들었어요.」 - 김영미 응암동 -
창릉천 / 1970년대 말
by 엄태평
진관동 모습 / 2003
개발전 진관동 약수터 (현 폭포동아파트) / 1991
by 권혜숙
진관동 메디텍고등학교 주변 전경 / 2004
2008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은평뉴타운에는 이제 6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다. (2019년 8월 기준 은평뉴타운 총 인구수 : 57,588명)
그 덕분에 진관동은 은평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동이 되었다. 은평뉴타운 내 대부분의 상가지구는 개발이 끝나면서 입점이 이루어졌다. 다양한 생활편의시설이 포함된 롯데몰이 2016년 12월 오픈했다. 또한 808병상 규모에 지하 7층, 지상 17층, 연면적 179,353 ㎡로 서울 서부권 최대 규모인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이 2019년 4월 1일 개원하여 대형병원이 없었던 은평 일대의 의료 수요를 충족시켜 주었으며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롯데몰 은평 / 2016
현재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전경
「2019년 성모병원 개원으로 큰 병원의 혜택을 보게 되어서 개원날, 환자 등록을 첫 번째로 하려고 달려 갔었어요.」 - 조태룡 불광동 -
「성모병원 개원, 한국고전번역원 이전, 앞으로 들어설 국립한국문학관 등은 은평구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최근 5년간의 정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은평성모병원"의 개원입니다. 」 - 김훈규 불광동 -
기자촌 전경 / 2003
「성모병원은 최고죠. 은평뉴타운은 대형병원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성모병원이 생겨서 너무 좋습니다. 지금 은평장례식장 자리에 일신병원이 있었는데, 은평구 주민들은 큰 수술을 거의 거기에서 했어요. 일신병원이 한방병원으로 바뀌고 한방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뀌었어요. 성모병원이 생기면서 너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동네의 격이 올라간 거죠. 」 - 조병권 갈현동 -
30년 넘게 늘 변함없던 놀이터 윗집 관형이네 / 2010
by 강상범
진관상회 / 2010
by 강상범
동네에 들어서는 어귀 / 2010
by 강상범
진입로에 자리잡은 종점슈퍼 / 2010
by 강상범
한()문화의 메카 은평
은평뉴타운은 신도시임에도 주변에 풍부한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은평구와 서울시는 이를 적극 활용하여 한옥, 한식, 한복 등 '한(韓)문화'를 즐길 수 있는 약 64만㎡ 규모의 한문화 체험 특구를 조성하여, 지난 2015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특구 지정을 받았다.
약 65,000㎡ 규모의 한옥마을과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천상병, 이외수, 중광 세 기인의 문학 세계를 조명하는 셋이서문학관이 먼저 문을 열었다. 보기 힘든 2층 한옥 등 미래형 전통가옥이 대거 들어선 은평한옥마을은 아직 정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울 사대문 밖의 유일한 한옥마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존재 가치가 있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구 단위 박물관으로 보기 드문 공간이고 최근에 는 한옥 전망대까지 갖추었다. 뒤를 이어 최근에는 역시 한옥으로 지어진 삼각산금암 미술관과 한문화특구와 은평한옥마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문화시설을 연계하는 거점 역할을 하는 너나들이센터가 문을 열었다.
은평의 한(韓)문화 체험 특구는 은평구의 품격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거의 사대문 안에 한정되어 있던 서울의 전통문화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은평 뉴타운과 한(韓)문화 체험 특구의 등장으로 은평구는 그야말로 대변신을 이루었다. 21세기 들어 풀뿌리 시민운동은 더욱 활발해져 그전에는 없던 도서관 문화가 태동하고, 생소했던 도시재생 사업이 은평구를 풍요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한옥마을 전경 / 2018.04.02
진관동 한옥마을 북한산 전경 / 2016.10
진관동 북한산 배경 한옥마을(왼쪽) 은평역사한옥박물관(우) / 2017.05.21
「은평구에 새로 생긴 것 중 마음에 드는 곳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에요.」 - 박상범 대조동 -
「한옥마을은 우리 전통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거든요. 한옥마을에는 북한산 풍광이 있으니까 자연을 접하면서 전통의 모습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어요. 일상생활에 큰 정신적 힘이 되지 않겠나 싶어요.」 - 이재찬 불광동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경 / 2018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개관준비 / 2014.03.06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경 / 2018
셋이서문학관 한옥단지 전경 / 2013.08.19
너나들이센터 '韓 문화의 봄' 특별전 개막식 / 2019
셋이서 문학관 전시회 기념행사 / 2015.10.21
삼각산 금암미술관 전경
삼각산 금암미술관
다양한 면모를 자랑하는 은평구 도서관
21세기 들어 은평의 도서관 문화는 독특하고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은평의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 출발은 2001년 6월 불광동에 문을 연 은평구립도서관이다. 이 도서관 건물은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수작이기도 하다. 회색 상자 모양의 노출콘크리트가 건물의 전부이지만, 묘하게도 새파란 하늘과 주변의 산, 나무와 잘 어울린다. 특히 옥상 쉼터에서 마주하는 회색 벽 사이의 공간에서 보이는 풍경이 무척 매력적이다.
2015년 구산동에는 도서관마을이 들어섰다. 2016년 제10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받은 이곳은 마을 안 골목길을 둘러싼 노후 다가구, 다세대 주택을 수리해서 만들었다. 기존의 마을 공간구조와 주민 생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도서관마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발상도 참신했지만 구청과 ‘마을N도서관’ 등 지역 내 5개 단체가 참여한 사회적협동조합인 ‘은평도서관마을협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뜻을 모은 설립 과정도 훌륭했다.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설계 발주 이전에 기본계획에 반영하고 도서관의 지향점을 설정한 점도 돋보였다.
2011년 12월에는 역촌동에 시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초록길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건축업, 광고디자인업, 동화작가 등의 직업을 가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주민들이 기증한 도서 7천권으로 시작한 은평구 최초의 민간도서관으로 현재는 창립 당시보다 두배의 장서를 가지고 있으며 캘리크라피, 시 읽기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동네 사람들이 생활공간과 가까운 곳에서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이다.
은평구립도서관 전경 / 2017.09.15
구산동 도서관 마을 준공 전 모습 / 2015.06.05
은평뉴타운 도서관 개관 / 2015.09.21
구산동 도서관 마을 기공식 / 2014.04.10
2018년 6월에는 숭실이 낳은 민족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학교 인근에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이 개관했다. 이름은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 재학 시절 불광동 친구 집에 가는 길을 묘사한 시 '새로운 길'의 첫 구절로 시구를 차용한 국내 최초의 도서관인데, 이름 만큼 독특한 외관과 내부구조로 개관하자마자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은평구에는 공립 7개, 민간 72개, 총79개의 크고 작은 도서관이 있으며 교회, 성당, 아파트단지, 노인종합복지관 등 다양한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린이, 만화, 영어 등 전문성을 갖춘 도서관도 적지 않아 주민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민의 힘이 모여서 구산동도서관마을이 된거죠. 구산동 도서관마을처럼 3,305㎡ 정도 되는 공간의 관리는 작은도서관 운영할 때와는 다른 역량을 요구받습니다. 그런 과정을 시민사회가 온몸으로 겪 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서관도 사실은 위탁을 받을지 안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거의 3년 동안 매월 회의를 했거든요. 위탁 시점에 더 괜찮은 데가 있으면 구청은 거기로 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되든 안되든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이걸 안 하면 우리동네 사람들만 혜택을 못 받는 거잖아요. 우리 가 조금만 고생하면 동네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는 뜻이 모여 지금의 도서관을 만들었어요.」 - 김영미 응암동 -
「우리 동네에 자랑하고 싶은 장소를 꼽으라면 구산동도서관마을입니다. 육아휴직 중에 처음으로 구산동도서 관마을을 방문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오래된 빌라들을 수리하여 지은 곳이라 그런지 마치 집에서 독서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유모차나 휠체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도 마음에 들었고요. 기획전 코너에 구비되어 있는 책이나 문화프로그램도 좋았어요.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어린이 열람실은 앞으로 더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아요. 」 - 권성하 구산동 -
「구산동도서관마을은 사업적으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고 주민 입장에서 너무 좋습니다. 주택 건물 4채를 벽만 터서 합쳐서 지은 도서관이죠. 너무 좋은 행사도 많이 해요. 어른이 보기 좋은 소 류나 사회과학류 서적도 꽤 많아요. 논문 쓸 때 혹시 여기도 책 있냐고 검색해서 갈 때도 있었지요.」 - 우성희 구산동 -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전경 / 2018.06
증산정보도서관 / 2018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모습 / 2018.06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개관식 / 2018.06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은평구는 집현전 학사들이 활동했던 진관사에서부터 정지용, 이호철, 기자촌과 은평클럽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전통을 내세워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에 성공했다. 유치서명 운동에 전체 구민의 절반 이상인 28만 명이 참가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유치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던 시기인 2016년, 은평구청은 그 일환으로 기자촌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고 노령에 접어든 기자촌 입주 언론인들을 초청해 당시를 회고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기자들은 회포를 풀며 기자촌 일대가 국립한국문학관 건립부지로 최적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현재 은평뉴타운 건설 지역 공사장의 차단벽에 그려진 수많은 문인 사진은 은평구의 문학 전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서 소개한 문인 외에도 쟁쟁한 작가들이 그 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기자촌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Homecoming Day / 2016.06.02
「은평구민으로서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했다는 것을 은평문인들은 매우 자랑스러워 합니다. 분명 세계에서도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 김삼동 구산동 -
「그동안 생활해보니까 해가 갈수록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을 느낍 니다. 국립한국문학관도 들어오고, 은평주민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 」 - 이재찬 불광동 -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전경 / 2018.10.31
국립한국문학관 부지 전경 / 2018.11.13
은평구의 보물, 북한산
북한산 둘레길은 등반로가 아니라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저지대 수평 산책로로, 2011년 21개 전 구간 71.5km가 개통되었다. 은평구 구간은 7구간인 옛 성길 일부, 8구간인 구름정원길(북한산 생태공원 상단–진관생태다리), 9구간(진관생태다리– 방패교육대앞) 전부, 10구간 내시묘역길(방패교육대-효자동 공설묘지)등이다.
북한산 생태공원 전경 / 2010.05.26
북한산성 입구 한문화 페스티벌 / 2017.10.21
북한산 생태공원 전경 / 2010.05.26
46년간 단절되었던 서오릉고개-앵봉산 녹지연결로 / 2018.07.31
43년간 단절되었던 녹번동-응암동 생태연결로 / 2015.04.04.
「2011년 북한산 둘레길 개통으로 편안하고 멋진 산책을 거주지 가까이서 할 수 있게 되어 다른 구에 사는 친구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은평구의 보물은 뭐니뭐니 해도 "북한산 둘레길" 입니다. 둘레길을 재정 비해서 주민의 접근성 이 좀 더 좋아지면 좋겠 습니다.」 - 조태룡 불광동 -
「은평구가 도심에서 가까우면서도 사방이 산으로 싸여져 있어요. 삼각산, 북한산 변은 제대로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은평의 보물입니다.」 - 최준호 역촌동 -
독박골풀장에서 : 차무달 대위 / 1952
by 차철수
독박골풀장에서 : 차철수 차무달 형제 / 1952
by 차철수
독박골풀장에서 : 차철수 차무달 형제 / 1952
by 차철수
「은평구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북한산 둘레길입니다. 계곡이 있어서 여름에 놀러가기 좋아요.」 - 전예슬 갈현동 -
「1971년 여름에 북한산 계곡으로 피서를 갔습니다. 북한산이 참 좋은 산이에요. 이 지역에서 가는 곳은 서오릉 아니면 북한산이지요.」 - 김일상 응암동 -
북한산계곡 아버지와 아들 딸과 함께 / 1983
by 김일상
북한산 / 1999
by 전예슬
북한산계곡 : 친구들과 함께 / 1971
by 김일상
북한산계곡 : 친구들과 함께 / 1971
by 김일상
도시재생 으뜸 은평 산새마을
신사2동에 위치한 산새마을은 1960년대 후반 망원지역 수재민들이 이주해온 지역이다. 1968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만들어졌지만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20년이상 된 노후주택이 약 80%에 달하고, 2012년 기준으로 월소득 200만 원 이하 가구가 절반이 넘는 낙후지역이었고, 고령증 주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2011년 은평구의 도시 재생사업인 '두꺼비하우징' 시범사업지역으로 산새마을이 선정되고, 2012년 서울시 주거환경관리사업지로 지정되어 사업비 27억 3,700만원이 투입되었다. CCTV와 보안등을 대거 설치하여 가로환경을 개선하고, 주민공동시설을 조성하자 마을은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을 계기로 주민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주민들은 30년간 방치됐던 개사육장과 도축장, 쓰레기와 오물로 인한 악취와 해충 등으로 심하게 오염된 나대지를 직접 정비해 1,600㎡ 규모의 공동 텃밭인 '산새텃밭' (산새마을농원)을 일구어냈다. 이 마을의 자랑거리는 고구마캐기, 배추심기 등 활력 넘치는 체험활동으로 수확물의 일부는 무료급식소에 지원한다.
마을회관인 '산새둥지'는 마을공동체 활성화의 거점공간이자 마을관리, 일자리창출, 집수리지원 등 마을의 사회·경제적 재생지원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산새둥지 1층에는 북카페와 공동육아방, 2층에는 청소년을 위한 배움교실, 3층에는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섰고, 둘레길 탐방객의 쉼터로도 쓰인다. 지역 육아모임과 청소년 동아리, 어르신 노래교실 등도 이곳에서 열린다. 화요밥상, 목요일마을회의 등 공동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적은 비용으로 집을 고쳐 사용하는 '맞춤형 집수리 지원사업'을 벌여 주거환경을 개선했다. 공사 범위와 공사비 등을 상담해주는 서울시집수리닥터단이 투입됐고, 주민이 직접 간단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집수리아카데미도 운영한다. 최근에는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 활기를 높일 수 있도록 도시재생에 참여할 청년활동가를 위한 셰어하우스형 두레주택이 들어섰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산새마을은 이제 도시재생에 나선 많은 이들이 견학을 올 정도로 은평구, 아니 서울시 전체에서도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자리 잡았다.
산새마을 전경 / 2017
산새텃밭 / 2016
「은평구에 거주하게 된 계기는 산새마을 때문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먼저 마을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는데, 한달동안 폐기물이 30톤이나 되었습니다. 구청 관계부서 직원들과 힘을 합쳐 기계차 2대를 활용해 하루 종일 치웠습니다. 기계로 다 실을 수 없어 손으도 날랐습니다. 분리도 해야 하니까요. 마지막 날까지 20명 정도가 계속 나와서 주말에도해서 한달만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근처 집에서 국수도 끓여 먹고, 밥을 해서 먹기도 하고 자장면도 시켜먹었습니다.」 - 윤전우 응암동 -
「처음에는 트럭 한 두 대 정도로 생각했지만, 폐기물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1960~80년대 오면서 서울에 택지라는 곳이 없어서 판잣집 짓고, 구들놓고 살았습니다. 개 도축장 때문에 개털이 묻어 있어서 산새마을에서 나는 거, 파는 거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동네에 돌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청소해 보니 개목줄, 쇠목줄만 한 자루 이상 나왔습니다. 쓰레기 치우고 흙 뒤집으며 찾은 목줄은 고철로 팔려고 모아두었지요. 100개 가까이 되었어요. 10년 가까이 개를 잡았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나이든 동네 어르신들이 손을 못 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석면과 슬레이트 등도 묻혀 있었습니다. 특수폐기물을 밀봉 할 수 있는 가마니 20개로 치웠습니다.
갈등은 당연히 있었지요. 이걸 치우고 나면 그 땅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죠. 빈 공간은 다시 쓰레기로 채워질 테니 무언가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적과 이익을 채우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고정관념과 시선이 있어 부담스러웠습니다. 처음엔 꽃밭을 하려고 해바라기, 코스모스, 메밀 씨를 사다가 코스모스, 해바라기 모종을 만들어서 키웠고 코스모스는 뿌렸는데 뿌리다 보니 꽃밭을 하기에는 땅이 너무 넓었습니다. 부당한 편견과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개인 수확물로 처리하지는 말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해는 수확물로 마을 잔치와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 - 윤전우 응암동 -
산새마을 공동체 / 2013
산새마을 청소모습 / 2012
마을에 새절 (신사)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신사동'. 이곳에는 풋 나무골, 고택골, 배나뭇굴, 새력굴 등 옛 지명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신사동 300번지 일대를 일컫는 '고택골'은 고려 말 고태(高太)장군이 나라에 공을 세워 하사받은 땅으로, 자손이 없어 대가 끊기며 사람들이 대신 장사를 지내주었다는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사동은 도시같지가 않고 이웃 간 정이 느껴지는 동네라서 좋았어요. 」 - 김영숙 신사동 -
「신사동은 봉산의 산줄기를 경계로 상신, 중신, 하신이라 하고 상신쪽을 새락골, 중신과 하신쪽은 고택골이라 했어요. 고택골에는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있었고요.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 묻히기 때문에 '고택골로 갔다'는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곤 했지요. 」 - 김성민 신사동 -
산새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신축공사 기공기념 마을잔치 / 2014.09.26
마을재생 및 주민성과로 이루어낸 봉산 도시자연공원 주차장 / 2015
신사동 집 아버님 회갑잔치 / 1960년대
by 김성민
숭실고등학교 신사동부지 토목공사 (옛 고택골) / 1973
by 숭실고등학교
신사동(현 덕산중학교 근처) / 1965년대
by 김성민
증산로379 (신사동338-1)앞 불광천을 가로지르던 다리 / 1959
한반도 신경제 중심지역, 수색역세권 개발
1970년도 이전 수색역을 달리던 미카3 기관차
지난 수년간 지역주민 숙원사업이었던 '수색역세권 개발사업'이 민선7기 들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수색역은 경의선 출발지인 만큼 통일시대 관문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서울의 관문이라는 지리적, 상징적 여건과 더불어 다가올 남북 평화통일에 대비하여 선제적인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바로, 경의선의 출발역인 수색역 일대에 동북아 경제의 중심축이 되는 '한반도 평화경제 플랫폼'을 조성하는 것이다. 통일시대 국제화물 운송 거점은 물론, 한반도 신경제의 중심지역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색역세권 개발은 은평구와 마포구를 잇는 수색교부터 지하철 6호선과 경의선, 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에 이르는 32만m² 가운데 운행 철로를 제외한 22만m²에 업무공간과 문화·관광시설,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는 1조7000억 원이다. 수색역세권 개발 1단계는 DMC역 위쪽 약 2만m² 터에 복합쇼핑센터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2020년에 세부개발계획을 세우고 도시계획시설사업 인가를 받아 2022년 착공을 목표로 한다.
변방의 은평에서 벗어나 주도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이끌고 나아갈 수색 역세권 개발은 매우 고무적이다. 서울 서부의 관문다운 면모를 과시하게 될 은평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1980년도 후반 수색철교
1980년도 이후 수색철교
상암동에서 바라본 수색역과 DMC역 일대 야경
수색로12가길23 서부교회
수색역전 육교에서 바라 본 남동방향의 서부시가지
은평터널로2길 1번지 수색할머니노인정
수색로 256 수색마트
「신증산동에서 68년을 거주했어요. 집 가까이에 산이 있어 공기가 좋고 풀내음이 가득한 우리 마을이 최고죠. 」 - 최일숙 증산동 -
「수색은 이웃 간의 풋풋한 정이 시골 고향과도 같이 느껴지는 동네입니다. 개발이 되어도 우리 마을 정서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정진국 수색동 -
은평터널길 골목끝에서 바라본 수색동 전경
수색로 293번지 성광빌딩에서 바라본 수색동 수색로20길 모습
은평터널로1길 6번지 (수색약수터길 4번지) 한전아파트
수색로18길 48번지 집앞 평상에서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
증산로9길 26-3 증산동경노당
은평터널로 27 수색동주민센터 옛청사
증산로9길4 서울탁주서부연합제조장 전경
문영마운틴 아파트에서 바라본 증산2교
수색역에서 바라본 수색동 전경
사회혁신과 창의공간으로 거듭난 혁신파크
2010년, 질병관리본부가 충북 오송으로 이전하기 전부터 그 부지에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건립,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40층 규모의 랜드마크빌딩 건립 등 다양한 계획이 제안되었지만, 부동산경기 침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시립대 제2캠퍼스 유치도 거론되었지만 오래 가지 못해 사장되었다. 그러다가 '서울혁신파크'라는 시스템의 도입이 결정되었다.
서울혁신파크에는 혁신가들의 사무공간이 들어선 미래청을 중심으로, 생활목공기술을 배울 수 있는 '목공동'을 비롯하여 3D프린터 등으로 일상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드는 '메이커'들의 공간 '제작동', 도시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를 나누는 '맛동', 버려진 자원의 새로운 쓸모를 고민하는 '재생동' 외에도 예술동, 참여동, 극장동, SeMA창고 등 8개의 공간이 들어섰다.
정문 앞 피아노숲과 혁신광장, 혁신가의 놀이터 등 야외공간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이 밖에도 더 나은 청년의 삶을 꿈꾸는 '서울시 청년허브', 50플러스 세대의 인생 2막을 지원하는 '서울시 50플러스 서부캠퍼스', 마을공동체의 연결과 성장, 사회적경제조직 네트워크 발전을 돕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서울시 협동조합지원센터' 등 다양한 기관들이 입주했다. 새 건물을 지어 입주한 서울기록원은 '잘생겼다 서울'의 새 멤버로서 문화도시 은평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혁신센터 내 대부분의 기관은 기존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공개된 열린 공간이다. 사실상 대학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은평구 주민들에게는 대학 캠퍼스 같은 느낌을 주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혁신파크는 전국에 산재한 '밸리'나 '파크'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자, 많은 잠재력을 가진 공간이다.
혁신파크 전경 / 2018
「다른 곳에 사는 지인이나 친구에게 소개하고 싶은 장소로는 <혁신파크>를 무조건 데려가고 싶어요. 왜냐하면 은평구 주민들이 항상 하는 말이 은평구에 대학이 없다, 캠퍼스가 없다 입니다. 저는 혁신파크에서 캠퍼스 같은 느낌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 다. 자유롭게, 누구는 연구하고 누구는 사업을 할 수 있고 누구는 또 교육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쉴 수 있고 누구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자유롭게 사람들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활동들이 펼쳐지는 공간입니다. 」 - 이신애 불광동 -
혁신파크 입구 / 2019.08
혁신파크 공유동과 연결동 / 2019.08
혁신파크 내 서울기록원과 50+캠퍼스 / 2019.08
혁신파크 미래청 전경 / 2019.08
시민참여도시 은평
고난의 연속이었던 20세기, 우리 나라는 독립운동, 산업화, 민주화, 문화발전,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통일을 제외하면,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들 중에서는 최고 수준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은평구는 지금까지 보아왔듯 이런 시대적 과제를 치열하게 수행해 온 공간이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에게는 ‘탈산업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주어졌다. 탈산업화 시대는 정부 중심의 중앙집권적 권력이 주도하던 산업화 시대와는 달리 지방분권적 사고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주도하는 사회이다.
은평구는 이런 시민들의 참여와 네트워크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은평구의 재정자립도는 서울시 25개 구 중 하위권이지만, 적십자회비 모금은 서울시에서 12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은평구민의 따듯한 마음씨를 보여주는 예 중 하나이다.
은평구는 주민이 주체가 되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을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에서도 모범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12년 전국 지자체 예산 효율화 발표대회 대통령상 수상에 이어,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사례 최우수 자치단체에 2016년부터 3년 연속 선정되었고, 2019년도 전국 기초단체장 매니페스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시민참여, 마을자치 분야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2010년 시작된 '은평누리축제'는 매년 가을 시민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은평문화예술회관, 불광천, 역촌역 일대 등 은평구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열려 은평시민사회의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소통과 상생, 공유와 협동이라는 시대 정신을 잘 알고 실천하는 시민들이 있기에 은평구의 미래는 밝을 수 밖에 없다.
은평누리축제 / 2010
참여예산 주민총회 / 2019
은평누리축제 / 2011
참여예산 청소년총회 / 2019
은평누리축제 / 2014
은평누리축제 / 2015
은평누리축제 /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