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
Storytelling
개청 40주년 은평구 스토리텔링 사진집
은평, 그곳에 살다
Eunpyeong, live there.
01
서울시 이전의 은평
서울시 이전의 은평을 소개 합니다.
02
은평의 서울시대
광복 이후 은평의 서울시대 시작.
03
은평구의 탈바꿈
함께 살아가는 은평, 은평구의 탈바꿈
04
비상하는 은평의 21세기
시대 정신을 잘 알고 실천하는 시민
1979년, 은평구 개청
1979년 10월 1일, 은평구는 서대문구에서 분리 독립하여 동 명칭 및 구역을 재정비하고 법인격을 가진 기관으로 승격했다. 당시 구청 산하에는 13개 법정동이 있었다. 은평은 대략적으로 북위 37°36'과 동경 26°55'에 위치하고 있는데,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그리스 아테네가 같은 위도에 있는 도시이다. 국내적으로 보면 동쪽과 남쪽으로 서울의 24개구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데, 동쪽은 종로구, 남쪽은 마포구, 서대문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와 접해 있다. 동남쪽으로 통일로를 따라 7km 정도 서울 도심과 떨어져 있다. 면적은 약 29.7㎢로 약 20배를 하면 서울 전체 면적이 되며, 서울 자치구 중 6번째로 넓다.
은평구 승격 및 청사 기공식 / 1979.10.01
은평구 승격 및 청사 기공식 / 1979.10.01
같은 해 '한양주택'이란 이름의 단층주택단지가 당시 은평구 진관내동, 정확하게 말하면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북쪽으로 300m정도 떨어진 곳에 들어섰다.
한양주택이라는 이름은 같은 이름의 건설회사에서 지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겉보기에는 깨끗했지만, 당시에 한양주택은 대단히 부실했다. 서울의 북서쪽 통로인 통일로 옆의 선전용 주택단지로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원을 가꿔서 풍경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런 이유로 서울의 생태문화적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양주택은 어느 마을보다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한양주택의 가치는 서울시로부터도 인정받아 1996년 10월 '제1호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천막동, 기자촌, 한양주택 등으로 이어지는 은평주민의 끈끈한 시민정신은 현재 서울에서 시민운동이 가장 활발한 구로 발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은평구청사 준공 / 1980.10
by 이한용
은평구청사 준공식 / 1980
by 서울역사박물관
은평구청사 준공식 / 1980.10.07
한양주택 / 1979
한양주택 / 1979
한양주택 / 1997
by 신도초등학교
「저와 연결된 은평의 역사는 통일로 조성하는 과정을 들 수 있어요.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남북대화를 위해서 오고 가는 길을 제대로 닦기 위해서 즉, 통일로를 정비할때에 한양주택이 생겼어요. 그래서 한양주택으로 이사했고 거기서 동생 출가를 시켰지요. 그때 사진은 없어요. 사진기 있는 집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데 아쉬운 일이지요. 」 - 최준호 역촌동 -
한양주택 / 1979
한양주택 모습 / 2000년대
한양주택 모습 / 2000년대
한양주택 모습 / 2000년대
개청 다음 해인 1980년 10월에는 녹번동 청사가 준공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불이흥업 자리에 은평구의 첫 중앙정부기관인 식품의약품 안정성연구센터 (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착공되었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나 국립보건원 등 많은 보건의료 관련 기관들이 들어섰다.
한국여성개발원 청사신축공사 기공식 / 1962.02
한국여성개발원 청사신축공사 기공식 / 1962.02
국립보건원(흰건물) 녹번동과 불광동 전경 / 1964
by 차철수
국립보건원 (현 혁신파크 일대) / 1971
by 차철수
여성개발원과 국립보건원 전경 / 1990년대
by 차철수
기념비적인 해, 1985년
1985년은 은평구 차원에서 기념할 일이 많은 해였다.
서울을 사선으로 횡단하는 지하철 3호선이 7월 12일 구파발~독립문(8.0km, 7개 역)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10월 18일에는 독립문~양재(18.2km, 16개역) 구간이 뒤이어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지하철시대에 접어들었으며,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인 김수근의 마지막 작품이자 한국 100대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불광동성당이 완공됐기 때문이다. 불광동성당은 근현대건축이 부족한 은평구에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다.
또한 9월에는 불광동에서 안양을 연결하는 20.5km의 서부간선도로가 착공되었다. 이 도로가 완공된 후 서울과 지방이 효과적으로 연결되어 은평구에도 활기를 불어넣었다. 3호선 개통과 함께 지하철 운행간격이 10분에서 6분으로 단축되었으며, 구파발에서 광화문까지 걸리는 시간은 버스의 3분의 1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3호선 개통 지축차량기지 전동차 반입식 / 1985.03.30
3호선 개통 지축차량기지 전동차 반입식 불광역 / 1985.03.30
불광동성당: 입학기념 형제들과(김수근 건축 전 뾰족성당 시절) / 1968
by 김동환
「1964년 천주교 불광동교회 건축 당시 건축책임자 친구와 같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지요. 」 - 조태룡 불광동 -
「은평의 역사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불광역 3호선 개통 당시, 개통일을 기다려 티켓을 사고 지하철을 탔던 경험이에요. 그 티켓을 모아둔다고 했는데 지금은 잃어버린 것 같아요. 」 - 황필승 은평구 청기와양복점 -
현재 불광동성당 전경
서부간선도로 기공 / 1985
서부간선도로 기공 / 1985
단독주택이 많았던 전원도시 은평
1980년 후반까지 은평구민의 대부분은 단독주택에 살았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허영자 교수도 불광동에서 살았는데, 언론인, 대학교수, 문인, 군장성 등이 많이 살았으며, 집들은 33㎡를 넘지 않았지만 마당이 넓었다고 한다. 허영자 교수는 좋은 공기와 물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였다고 회고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신달자 교수도 165㎡ 규모의 정원이 있던 신사동에서 많은 꽃을 키우며 살았다. 이사 후 일년 만에 부군과 시어머니가 쓰러져 무척 고통스러운 세월이었지만, 문인으로 가장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운명의 장소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중구 정동에 법원과 검찰청, 문화방송국 (MBC)이 있던 시절 갈현동 쪽에는 법원 직원들이, 선정국제관광고등학교 후문 쪽에는 판검사들이 사는 고급주택이 많았다.
당시의 아름다운 단독주택들은 현재는 대부분 빌라나 다세대주택, 또는 아파트단지로 변모하여 그때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아쉬움으로 남기도했다.
진흥로 138-20 (녹번동 141-32) 단독주택 안 가족사진 :
당시는 모든 집들이 이런 마당이 있는 주택 / 1981
by 박부영
신사2동 앞마당 / 1984
by 박지현
진흥로 9-3 (역촌동 44-7) 오빠와 집 앞에 / 1983
by 송영은
「예전에는 단독주택이 많았어요.
응암동 1번도로, 2번도로, 3번도로, 5번도로까지 다 단독주택이었고 어렸을 때는 외갓집이 거기 단독주택에 살았었거든요. 저도 4~5살 때는 서울에 잠깐 올라와서 살았는데 그때 그 단독주택에 살았었어요. 3번도로하고 2번도로 사이에 수영장 있는 집도 있었어요. 김홍신 등 유명한 작가도 많이 살았어요. 」 - 박종배 응암동 -
「당시 녹번동에는 모든 집이 단독주택이었어요. 집집마다 사진처럼 넓은 마당이 있어서 꽃을 심고, 화단을 가꾸고 그렇게 살았어요. 여기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놀기도 했지요. 사진은 시어머니와 함께 남편, 아들딸 삼남매와 찍은 사진인데, 1981년 9월에 찍은 거로 되어있네요. 마당에는 꽃뿐만 아니라 감나무, 대추나무 등 과일나무도 심어서 언제나 풍성함이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정겨운 골목이 없어지고 모두 아파트로 바뀌니까 아쉽지요. 대조동 우리집도 그랬지만 집집마다 대추나무가 많았는데, 어느새 다 사라지고 안 보이더라고요. 단독주택들이 많이 없어지고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서 아쉬워요. 나지막한 집에서 안 살아 봤다면 모르실텐데 그런 집들은 위압감이 전혀 없어요. 」 - 박부영 진관동 -
단독주택단지 전경 / 1990
단독주택단지 전경 / 1990
단독주택단지 전경 / 1990
그 다음 해인 1986년에는 은평구 최초의 대단위 아파트단지(1,340세대)인 불광동 미성아파트가 착공되어 1988년 선을 보였다.
1980년대 후반 '200만호 주택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일산신도시가 대규모 주거단지로 개발됐다. 이에 따라 은평구의 도로교통 수요도 급격히 증가했고 주변에 많은 도로가 건설되었다.
미성아파트가 보이는 전경 / 1990
불광3동의 전경 왼편에 진성아파트 / 1982
by 고경석
연신초등학교에서 보이는 맞은편 진성아파트
(현재 북한산대창센시티 아파트로 재건축) / 1982
by 고경석
「이 사진이 35년 전이니까 부녀회 활동할 때거든요. 제가 부녀회장을 한 6년인가 7년 했어요. 맨날 이 고아원에 갔었고, 장병 따라 김장도 해주러 갔었고요. 이건 감사패를 받는 건가봐요, 이건 응암부녀회원들하고 찍은 사진이고, 이건 불우이웃돕기 현장 방문한 사진이에요. 얼굴 보니까 다 젊었을 때네요. 」 - 서성희 응암동 -
응암동 부녀회 연중행사였던 군부대 봉사 서오릉 근처 군부대 / 1980년대 말
by 서성희
은평구청 앞 응암3동 부녀회원들과 / 1980년대 말
by 서성희
응암동 부녀회장 시절 / 1980년대 말
by 서성희
은평구청 앞 제일식당에서 / 1980
by 이경환
은평구 제일뷔페 앞에서 / 1985
by 이경환
1990년대의 변화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인 1990년대 은평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1991년 3월에는 구의원선거가 열리면서 구의회가 구성되었고, 6월에는 서울시의회선거가, 1995년 6월에는 초대 민선구청장선거까지 실시되면서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91년 4월, 은평구는 기초의원 선거를 통해 초대 지방자치의회를 구성한 이후, 16명의 의장을 배출한 지금의 제8대 은평구의회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열정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은평구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 50만 은평구민을 위하여, '주민'이 '주인'인 은평구, 주민과 통하는, 사람중심의 은평구의회를 만들기 위해 의원들은 오늘도 현장에서 정직하고 바른 의정활동을 통해 은평구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은평을 만들고 있다.
불광중학교 부근 개발전 논 / 1990
by 권혜숙
은평구 전경 / 1990
은평구 전경 / 1990
은평구 전경 /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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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전경 / 1990
은평구 전경 / 1990
은평구 전경 : 거북바위에서 / 1990
은평구 전경 / 1996
은평구 전경 / 1996
은평구의회 의원 연찬회 / 1998
서부경찰서 / 1990
은평구의회 개원식 / 1991
서부 서울우체국 / 1990
은평구의회 개원식 / 1991
서부세무서 / 1990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던 수색동의 연탄공장은 점차 연탄 수요가 줄고 도시가스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일연탄은 이미 1980년대 후반 폐쇄했고, 1992년에는 삼천리연탄 공장이, 1999년에는 삼표연탄 수색공장이 문을 닫았다. 한일연탄은 현재의 수색교 건너편에 위치했으며, 삼표연탄은 현재의 이마트(수색점)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수색동은 상암동 개발과 함께 과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2020년부터 서북권 3개구와 코레일과 협력하여 시작되는 수색 역세권 사업이 완료되면 서울 서부의 관문다운 면모를 과시하게 될 것이다.
메디컬 빌딩에서 바라본 수색동 전경 / 2010
by 물빛 고운 동네 수색, 증산
상암동 컨텐츠진흥원에서 바라본 수색동 전경 / 2010
by 물빛 고운 동네 수색, 증산
수색로 북가좌동 방향과 수색동 / 2010
by 물빛 고운 동네 수색, 증산
메디컬센터에서 바라본 과거 천막동 자리 (수색로14길5-3번지) / 2010
by 물빛 고운 동네 수색, 증산
월드컵현대아파트에서 바라본 불광천과 증산동 전경 / 2010
by 물빛 고운 동네 수색, 증산
개발전 수색부근 야외스케이트장/ 1985
by 김일상
개발전 수색부근 야외스케이트장/ 1985
by 김일상
수색 구룡길 입구 / 2006.03
수색초교 앞 / 2006.03
은평구민한마음축제 / 1995
은평구민한마음축제 / 1995
제1회 은평구민의날 / 1996
제1회 은평구민의날 / 1996
은평구 보건소 진료모습 / 1997
은평구 보건소 예방접종 / 1997
구산 거북경로당 개관식 / 1996
구산 거북경로당 개관식 / 1996
광복50주년 국토순례단 환영식 / 1995
구립 녹번어린이집 준공 / 1997
지금은 사라진 서부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모습 / 1996
by 이경환
1996년은 문화와 예술 면에서 특기할 만한 해였다.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구민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750석 규모의 공연장과 200석 규모의 대회의실을 갖춘 은평문화 예술회관이 개관하고, 제1회 파발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축제에는 구내 각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구파발에서 출발하여 연신내를 거쳐 녹번동 구청까지 행진하며 은평구의 자존심을 보여주고 있다.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 / 2015.05.20
은평문화예술회관 개관 / 1996
은평문화예술회관 개관전 / 1996 이전
은평문화예술회관 리모델링 야외공연장 개관식 및 기념공연 / 2015.04.01
통일로 파발제 / 2004
통일로 파발제 / 1996
통일로 파발제 / 2019
통일로 파발제 / 2009
통일로 파발제 / 2006
1998년 11월, 은평문화원이 지방문화원법에 의해 설립 개원하였다. <은평향토사료집>과 <은평문화> <은평문예>등 책자발간을 비롯, 은평향토해설사양성전문교육과정, 늘푸른백일장, 은평학생미술실기대회, 사랑의도서나눔, 청소년예술제, 문화유적탐방, 늘푸른강좌 및 자서전쓰기 등 지역 향토문화활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은평문화예술회관은 은평구 최초이자 유일한 대형공연장으로 많은 역할을 해냈지만, 지역적으로 쏠려 있는데다가 구청에 가려 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은평문화원 주관 청소년예술제 / 2018
by 은평문화원
은평문화원
by 은평문화원
늘푸른백일장 / 2019
by 은평문화원
9기 은평향토문화해설사과정 수료식 / 2019
by 은평문화원